“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죽음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나약해집니다.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감정 상태는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묵묵히 죽음을 수용하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에 대해 성경은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예수님의 죽음을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이 주목하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그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마디 말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는 말을 하셨는데, 상황은 이렇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어떤 상황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그에 대해 예언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이 말을 하셨던 것입니다. 목마르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대주었습니다. 목마름을 해결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수를 끝까지 경멸하려는 행동을 사람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구약 성경의 성취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란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갖고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는 말과 함께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란 설명과 함께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란 말을 연결한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담아내고 있느냐면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성취하셨다는 그의 만족감입니다. 죽음의 그늘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만족감으로 이겨내셨던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는 당당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만 집중하셨던 것입니다. 죽음이 주는 암울함, 공포,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으시고 그것에 맞서 싸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신 예수님은 죽음의 어떤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호흡이 끊기는 순간까지 그는 오직 하나에만 가치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뜻을 성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란 말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란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데 죽는 순간까지도 이를 마음에 새겨두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볼 수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담대하게 해낼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과연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하나님의 뜻도 소용이 없다는 잘못된 허무주의에 맞서 싸우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조차도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해결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전력을 다하셨던 예수님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해도 이 마음을 붙들고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 자세로 이 땅을 살아간다면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좀 더 당당해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