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25절-27절 “새로운 가족 관계” 2021년 11월 22일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사랑하는 아들이 누명을 쓰고 국가 권력에 의해 비참하게 목숨을 잃게 된다면 부모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자책감과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가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채 죄도 없는 아들이 당시 가장 비참하고 모욕적인 십자가 형벌을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본문은 감정 상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이 건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로서 느꼈을 아픔을 짧은 문장 하나로도 표현할 수가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감정 상태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아들과 어머니의 마지막 대화를 기록한 것인데, 그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형제들이 아닌 자기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 중 하나에게 어머니를 맡긴 것은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삶의 가치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혈육을 넘어 신앙으로 맺어질 새로운 가족이 형성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요17:12)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란 곧 그의 제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을 지키셨다고 합니다. 지금 십자가를 지신 것도 그들을 지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들이 곧 예수님이 지켜야 할 새로운 가족이었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가족 안으로 어머니가 들어올 수 있도록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또 다른 아들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자기를 따르는 제자에게 맡기셨습니다. 혈육이 아닌 믿음의 가족 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머니도 새로운 가족 안에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따르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혈육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생명의 주로서 믿고 따라가야 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육신의 어머니일지라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혈육 관계가 믿음의 가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안됨을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초대 교회를 형성했던 사람들 중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행1:14)도 있었음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혈육 관계가 예수를 따르지 못하게 막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셨던 예수님의 의도가 사도행전에서 명백히 밝혀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일지라도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믿음의 가족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새로운 가족들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6:25)면서 남편의 아내 사랑도 신앙 가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혈육 관계까지도 신앙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 관계 속에서 봐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