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23절-24절 “하나님의 보호하심” 2021년 11월 19일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사형 제도는 국가의 권력으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법의 집행 행위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형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흔하게 행해졌던 제도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할 당시 로마 제국에서 사형 제도는 국가 통치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정적을 없애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를 달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님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왕되심을 거절한 상태에서도 빌라도가 죄패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쓰고 십자가 위에 붙여놓은 것은 통치자로서의 위엄을 드러낸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도 로마 제국 앞에서는 한낱 사형수에 불과할 뿐이며 빌라도의 명령 하나에 목숨을 잃게 됨을 부각시켰던 것입니다.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신세가 된 유대인의 왕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낸 것입니다. 겉옷과 속옷을 다 빼앗기는 수치를 당함에도 조금도 저항할 수 없는 왕의 모습은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어찌 이런 나약한 존재가 왕일 수가 있느냐란 조롱이 주변에서 쏟아졌을 것임을 우리는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겉옷은 네 깃으로 나누었고 속옷은 통으로 된 것으로 제비 뽑아 한 사람이 갖는 것으로 군인들이 결정하는 모습에서도 유대인의 왕인 예수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맞느냐란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군인들의 횡포와 거만한 태도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는 놀라운 내용을 요한복음서 저자는 언급합니다.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는 구약 시편 22:18의 인용은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군인들의 만행과 예수의 무기력함이 대조를 이루는 현장을 보도하면서 시편에서 예언된 내용이 지금 성취되고 있음을 당당히 밝힌 것에는 우리로 다른 것을 보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래 전에 예고하셨던 메시아 고난 이야기가 지금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로마 군인들의 행위를 그들 임의대로 행한 것이거나 당시 관행으로 행해진 것으로만 이해하려는 접근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겉옷과 속옷을 빼앗아가는 로마 군인들의 행위 자체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무기력하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 하에 있었던 것입니다. 무늬만 유대인의 왕일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군인들의 사소한 결정 하나에도 세심한 관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십자가 처형을 감당하고 있음을 구약 시편의 말씀을 인용함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보호하심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보호받는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겉옷과 속옷이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느냐까지도 그의 뜻 안에 있었기에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실현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야 한다는 식의 이해를 멀리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놀라운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은 이 고백을 매일 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