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13절-14절 “의미 없는 자존심 대결” 2021년 11월 15일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 (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누가 더 많이 먹느냐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하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먹방이 큰 인기를 끌면서 더 많이, 더 빨리 먹는 것을 경쟁하듯이 대결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구독자를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음식 먹기 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결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그 세계 속에 있는 이들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놓고 빌라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듯한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기를 꺾기 위해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를 이용하려는 그의 정치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 이름까지 거론하며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면서 압박을 가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말에 마음이 크게 상했습니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는 묘사에서 이 점이 드러납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재판석에 앉은 모습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감정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연이어 나오는데, 그가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왕”이라고 대놓고 말한 부분입니다. 그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요18:39)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그가 유대인들에게 “보라 이 사람이로다”(요19:5)면서 예수를 지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 왕’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 왕’이라고 해버렸으니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었기에 그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심산으로 “보라 너희 왕”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가 진정 이스라엘의 왕임에도 유대인들이나 빌라도 모두 다 이것을 이용하고만 있었음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가 누구냐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가운데 자존심 대결만을 펼치면서 상대를 누를 생각에만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이 측은하게만 느껴집니다. 자신들이 쥐고 있던 권력이나 사회적인 지위에 취해서 눈 앞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왕임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이용하려고만 했지 그분을 믿고 따르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그들이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자존심 대결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에게도 나타났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2인자가 되느냐를 놓고 서로 대결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자존심 싸움은 인간 욕망의 추악함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말할 수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유혹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면서도 서로간에 자존심 대결이 생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무섭습니다.

신앙 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 속에서 서로 배우고 훈련하고 성장하는 것이 신앙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자존심 싸움은 이러한 공동체성을 무너뜨릴 수가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방해물입니다. 이 싸움에 걸리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 자리는 없어지고 자존심을 세우는 일만이 중요해집니다. 예수님을 위해 교회 공동체가 형성된 것을 알지만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면 예수님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받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신앙에 있어서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가 없는 자존심 대결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 조금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우리 자존심까지도 주님을 위해 내려놓으라는 의미까지 내포된 것입니다. 우리는 의미가 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예수님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