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빌라도와 유대인들은 서로를 꺼려했습니다. 빌라도는 비유대인으로서 로마 총독으로 유대 사회를 통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방인 총독을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빌라도 앞에는 서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한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빌라도 법정에 행악자를 세워야 되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를 고발한 그들의 처지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고 했던 것입니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목적을 위해 잠시 휴전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유대인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예수를 죽일 수가 없었기에 유대 권력자들은 빌라도의 힘을 빌어서 예수를 제거하려 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평소에 원수라 생각했던 빌라도와 손을 잡는 이 비열함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행악자’로 정죄하고 빌라도 법정에 세우려 했지만 그들 자신들이 ‘행악자’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를 죽음에 처할 정도로 나쁜 죄질을 갖고 있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갔지만 그들이 이미 더 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감히 정죄하는지 너무도 아이러니한 장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빌라도와 손을 잡고 예수를 공개적인 사형수로 만들려는 유대인들의 이 잔인함을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저자는 모든 감정을 다 빼고 매우 차분한 어조로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고 적고 있습니다. 악과 악이 손을 잡고 선한 사람을 사형수로 만드는 최악의 장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린 것입니다. 감정적인 분노를 자아내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이 오기 전부터 이미 이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 비유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3)라고 설명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처형될 것을 이미 아셨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공개 처형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가 드러나면서 인간의 비열함이 극명하게 도드라졌던 것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잔인함과 냉혈적인 태도가 예수 공개 처형 과정에서 여과없이 표출되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비열함과 정치적인 야비함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공개 처형하겠다고 작정하고 빌라도와 손을 잡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당시 사회에서 아무리 존경을 받았다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잔혹한 죄를 지은 죄인이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인 야망이나 종교적인 이익을 숨긴채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잔혹한 행위를 함에도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당한 억울한 일에 우리가 분노하고 인간의 비열함과 잔인함에 치를 떨 수는 있지만 그것만을 보면 안됩니다.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신앙의 눈으로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 부족과 감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말씀에 비추어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도 긴 안목을 갖고서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