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어떤 연예인이 과거에 자기 엄마가 부끄러워 친구들 앞에서 엄마인 것을 숨긴 적이 있음을 고백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자기 부모를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자녀들의 행위를 미숙하고 치기어린 행동으로 여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 자체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어른이 된 후에도 그 때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의 인생에도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정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부정해버린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부인한 첫 번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다른 복음서와 달리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 한 사람과 함께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가는 예수님 뒤를 따랐습니다. 다른 제자의 이름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당시 대제사장과 사적으로 매우 친밀했던 점을 본문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 집 뜰에 들어가고”에서 알 수 있듯이 대제사장과 무척 가까운 사이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왜 대제사장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본문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도적으로 문 밖에 서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제자와 달리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심리 상태는 불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 밖에 서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대제사장 집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두렵고 그렇다고 아주 멀리 가기에는 양심에 가책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쩡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던 그가 다른 제자의 설득으로 대제사장 집 안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문을 지키던 여종 하나가 순순히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가 문을 지키던 여종에게 말을 했다고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데, 베드로를 들여보내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문을 지키던 여종은 베드로가 들어오도록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여종에게서 받게 됩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란 질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종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여종이 이전에 베드로를 본 적이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반신반의한 상태에서 이 질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냥 다른 제자와 함께 안전하게 문을 통과한다고 생각했는데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란 질문을 들었으니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을만큼 놀랬을 것입니다. 그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 그 순간을 모면합니다.
본문은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날씨 이야기를 한 것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마음 상태가 얼어붙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 사람의 몸이 굳어진 것처럼 베드로의 마음 상태가 얼어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란 질문을 들었으니 답은 너무도 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예수님을 부인해버린 베드로의 마음이 추운 겨울처럼 차가웠던 것입니다. 과거 예수님을 위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그가 지금은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신앙의 불이 꺼져버린 상태에서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란 질문을 들었으니 긍정적인 답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이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얼어붙어 있다면 예수의 제자로서의 소명 의식마저도 얼어붙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앙이 다시 뜨거워질 때에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예수의 제자로 당당히 서 있을 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