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무장한 군인들에게 체포된 예수님은 마치 순한 양처럼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칼을 사용해서 저항했던 베드로의 행위까지도 막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일지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부장’은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장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어느 정도의 군인들이 한꺼번에 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저항을 하지 않고 체포되셨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은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곧바로 빌라도 법정으로 가지 않고 대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제사장에게로 먼저 가는 것이 당시로서는 순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로마 속국이었기에 유대인들에게는 심판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간 것을 볼 때에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 해의 대제사장이 그가 아니라 그의 사위인 가야바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야바에게로 가야 함에도 안나스에게 갔다는 것은 실세가 그였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위가 대제사장으로 있지만 권력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에 대한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 또한 권력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서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한 자러라”는 설명을 듣게 되는데, 요한복음11장50절에서 가야바가 했던 말을 재인용한 것입니다. 그의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시해줄 뿐 아니라 그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올바르게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판단입니다. 하지만 안나스와 손을 잡고 예수를 체포한 장본인임을 볼 때에 우리는 그의 말의 진위를 떠나 가야바가 어떤 인물인지를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에 비교적 좋아보이지만 그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권력 욕망을 볼 때에는 아주 무서운 사람인 것을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단순히 종교적 행위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심장부를 차지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도 그런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던 일에 동참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확고히 하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대제사장으로서 당시 사회의 핵심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이 예수 살해를 위해 선봉장 노릇을 한 것은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권력 사랑이 마음과 생각을 다 지배했기에 그 일을 서슴없이 행했던 것입니다.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일은 권력의 맛을 본 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한 줌 밖에 되지 않은 권력이라도 그것을 쥐고 있으면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어떤 기관이나 국가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위치에 서게 될 때에 권력은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오는데, 신앙을 갖고 있을지라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면서 예수님을 평가했던 가야바가 지금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볼 때에 권력에 눈이 멀게 되면 어쩔 수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서로 섬길 것을 간곡히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욕망의 노예가 되면 섬기는 자리에 서는 일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바처럼 예수님을 비교적 정확히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대한 욕망으로 섬김의 자리를 외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높아지려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자리에 앉으려는 욕망을 철저히 쳐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권력에 맞설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