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9절-10절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 2021년 10월 1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가족 중 누군가가 중한 병에 걸리면 기도하게 됩니다. 신을 믿지 않지만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막연한 대상에게 기도합니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지만 그것을 해낼 수가 없기에 어떤 신에게라도 매달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연약하기에 기도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지킬 수가 없기에 신의 능력을 통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기도는 무언가를 지키고 싶을 때에 더욱 간절해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이타적인 마음으로 기도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것을 지킨다는 생각보다는 상대가 소중하기에 얼마든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다음에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란 기도의 이유를 제시하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이들인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내게 주신 자들’이란 표현에서 그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이들을 가리킵니다. 원래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아들이신 예수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예수님에게 소중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것인 동시에 예수님의 것이었습니다. 이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해당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버지의 것이면서 예수님의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유인 동시에 예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이에 대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란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를 소유한 분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무척 소중하게 대하십니다. 그 증거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고 묘사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장면인가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듯이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다니 이보다 더 큰 위로도 없을 것입니다.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역할에 대해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성령의 기도는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고 하십니다. 부족한 제자들만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까지도 품으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실패한 것처럼 우리도 사는 동안 신앙적으로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의 것’인 동시에 ‘예수님의 것’인 점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우리를 소중히 다루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이런 애정을 우리가 충분히 인식한다면 예수님을 대하는 모습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을 위해 우리 또한 헌신을 다짐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주를 위하여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것이기에 지금도 주님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삶을 우리가 산다면 주님은 우리를 더욱 더 소중히 여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