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5절 “동행의 즐거움” 2021년 9월 28일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행복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더 이상 대중 앞에 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자체가 힘들 정도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에는 전혀 몰랐던 외로움이란 고통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겪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누군가와 함께 했던 지난 일들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되기도 합니다. 대중의 인기에 심취한 나머지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산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도 이런 유혹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추종했으며 그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중의 인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철저히 혼자 버려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제자들마저도 그를 버릴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에 빠지거나 인생을 후회하며 자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중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도 한 가지만은 반드시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동행하는 시간을 잃지 않았습니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아버지와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셨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거나 추앙받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공유하고자 하셨습니다.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거나 세상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졌는지를 오늘 본문이 증거합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기서 ‘전에’와 ‘지금도’란 시간 부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이 점을 무척 강조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는 말씀에서 이를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와의 동행이 예수님의 인생에서 어느 정도로 귀한 일이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제자들마저도 그의 곁을 떠날 것을 아심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붙들고 계시는 모습은 신앙적으로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는 것에만 마음을 쏟다가 하나님과의 동행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란 예수님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홀로 영화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함으로 얻게 되는 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나를’이란 표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선이 되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아버지와 함께’를 우선시 여기는 모습은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영적인 자산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에 익숙한 우리가 이렇듯이 ‘아버지와 함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도를 할 수 있다면 큰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동행이 주는 즐거움을 아는 자로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복을 우리가 지금 여기서 누리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