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21절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마음” 20201년 10월 12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그 중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강력하게 외치셨습니다. 스스럼 없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8)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단순히 인간 예수로만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요6:42)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를 그들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해주듯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가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그의 신적 기원을 온 세상이 받아들이게 하겠다는 그의 원대한 포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마음에 품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믿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곧 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과연 이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그들이 갖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이에 대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란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게 제자들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역량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게 하사’란 말은 그들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삼위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 그룹이 하나가 되어 삼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과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이 세상에 예수님을 알리는 사역에 선결조건이 됨을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이 하나됨도 그들의 의기투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하나로 모은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하나됨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을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들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셔야 할 정도로 이 일은 제자들 역량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의 역량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일 자체가 사람의 능력을 벗어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교회와 개인이 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할 수 없지만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미 예수님 자신이 이 일을 해내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 품으신 이로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에 나가 예수님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가 있기에 이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평범한 이들을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가 세상 속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서도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세상은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식으로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러 오신 예수님의 넓은 마음을 우리가 갖고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품은 신앙인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