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함이니”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뉴스의 확산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지구 전체가 동시에 뉴스를 공유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산되지 말아야 할 뉴스까지도 퍼져나감으로 큰 피해를 입는 일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식을 빨리 듣는 좋은 면도 있지만 확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인터넷이 없던 일세기 유대 사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의 속도도 엄청 빨랐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좋은 뉴스만 전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귀신의 왕이라든가, 미친 사람이라든가, 민족을 파탄에 빠뜨릴 수 있다는 소문들도 확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이런 나쁜 뉴스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무슨 행동을 취했다는 흔적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하신 적도 없습니다. 제자들을 다그쳐 좋은 소문을 내도록 부추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좋은 소문 또한 빠르게 유대 사회를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뉴스가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이며 그를 믿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좋은 뉴스가 사람들 마음 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시면서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란 말로 앞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역사의 현장을 내다보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확산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내다보신 것입니다. 지금 유대 사회에서 예수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의 말을 통해 주변 나라로 믿음의 소문이 확산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냐에 대해 우리는 이들이 비유대인들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신앙이 유대 사회를 넘어 비유대 사회까지 퍼져나갈 것임을 이 말씀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어떤 식으로 믿음의 확산이 이루어졌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 소아시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예수 신앙이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장면을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확인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믿음의 소문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1:8).
예수 신앙은 그것을 갖고 있는 자를 통해 전달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부분에 대해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라면서 인정하셨습니다. 먼저 믿는 이들의 말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예수 신앙이 전파되는 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할지라도 지금도 이 방식은 유효합니다. 예수 신앙을 갖고 있는 자들의 말을 통해 이 시대에도 믿음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시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문명 도구들이 있지만 믿는 자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음의 확산은 정보 전달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믿는 이들의 확신에서 비롯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할 때에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힘있게 전달할 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 우리 시대의 교회가 예수 신앙을 얼마나 확고히 붙들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의 확산의 주역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예수 신앙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자신을 검증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지, 어떻게 이 믿음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교회는 예수 신앙 위에 세워진 믿음의 공동체로서 이 믿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시대 교회는 오늘도 예수 신앙을 더욱 확고히 다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