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2절 “다스리는 권세” 2021년 9월 23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 당시 로마 황제는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권세에 대항한다는 것은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어야만 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예수님이 갖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만이 누릴 수 있는 권세를 쥐고 있다는 이 말은 정치적으로 보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만한 것입니다. 예수란 유대인 청년이 로마 황제에 대항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권세를 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일까요? 로마 황제만이 줄 수 있는 권세인데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로마 황제가 주지 않은 것을 아버지가 주었다는 이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닐 수 있는 길은 ‘아버지’의 존재를 밝히는 것 뿐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유대인의 하나님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진짜 주인입니다. 따라서 이 분은 아들인 예수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수 있는 권한을 쥐고 계신 유일한 존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권세를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셨을까요? 당시 로마 황제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행하신 것을 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백성과 동떨어진 궁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자기 삶을 즐기던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병들고 절망에 빠진 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를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권세를 사람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소외된 이들을 품어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막힌 담을 헐고 생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통로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이를 위해 죄와 싸우셨고 죄의 권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가 쥐고 있던 권세를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에 사용하지 않으시고 죄의 권세를 제거하는 일에 사용하신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당시 어떤 권력자도 보이지 않았던 권력 행사였습니다. 절대 권력을 쥔 자로서 이렇게 자기 희생적으로 권세를 사용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셨습니다. 그의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유일한 방식의 권한 행사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사용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쥐고 있는 분이었지만 우리에게 영생을 값없이 주시기 위해 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내놓는 방식으로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셨던 길이었습니다. 또한 아들이신 예수님도 자발적으로 이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면 그를 따르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다스리는 권세가 있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남을 살리는 일에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이며 섬김의 모습입니다. 다스리는 권세를 쥐고 있음에도 섬김의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작은 섬김으로 그의 뒤를 따를 수가 있어야 합니다. 더 큰 섬김을 위해 더 큰 권세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권세라도 다른 이를 살리는 일에 사용한다면 주님이 이것을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다스리는 권세가 아닌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이타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주님은 부족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