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13절 “예수님의 기쁨을 아십니까?” 2021년 10월 5일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우울하면 세상이 다 불행해 보입니다. ‘세상만사가 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에 찾아올 수가 있습니다. 한 순간 모든 것을 지옥으로 만들 정도의 고통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유를 분석하고 원인을 파악해도 마음에 깊이 패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기독교인들은 기쁨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해지기를 소망하셨습니다. 특히 자신이 그들 곁을 떠날 시점이 다가오자 이 부분을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와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22)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시는 가운데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누려야 할 기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도 여러 번에 걸쳐서 ‘내 기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내 기쁨’이 제자들 안에 충만해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당시 제자들이 느꼈던 기쁨과는 어떤 차이를 보이셨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중요한 힌트는 요한복음8:29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누리셨던 기쁨의 실체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기쁨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의 기쁨으로 채움받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이 예수님의 삶에 가득찼던 것입니다. 물론 강력한 저항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보이는 세력과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의 즐거움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난관을 다 뚫고 아버지의 기쁨을 자신의 마음에 가득채우셨습니다. 이에 대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란 말로 표현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아버지의 기쁨에 모든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는 열정이 그로 하여금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제자들이 그의 기쁨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하셔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 곁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낙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잘 아시고서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요16:6)고 하셨습니다. 근심으로 채워진 제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기쁨으로 채울 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만이 해답임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근심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현장에서도 아버지의 기쁨으로 채움받아 모든 근심을 이겨내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의 기쁨으로 채움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채우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마음을 예수님에게 활짝 열고 그의 기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을 근심케 하는 일들에서 눈을 돌려 예수님의 기쁨에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참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런 삶의 모습을 실제로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예수님의 기쁨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우리를 기쁨으로 채우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열정이 우리 안에 전달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근심케 하는 이들에 거리를 두고 우리를 기쁨으로 채우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