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책망하는 것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책망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단지 이 문제들이 반복해서 표출될 뿐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세상이 자신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성령이 오셔서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시는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책망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본문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면서 죄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이 안고 있는 죄의 본질을 알린 것인데, 행위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법을 어기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적인 측면에서 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불신을 죄로 규정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을 죄로 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중 첫 두 계명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의 대상이 예수님이어도 죄가 된다는 것에는 과연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 불과하기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죄를 그에게 적용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들의 죄에 대한 이해를 정면으로 반박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죄이듯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 또한 죄임을 강력히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성령의 사역이 예수 전파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은 철저히 예수를 세상 속에 알리는 일에 집중하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은 교회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도록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불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며 성령의 사역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를 불신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려는 영생을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거절한 것이기에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예수에 대한 불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용서도 막아버리는 치명적인 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예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것은 단순히 사람들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하나의 정치 집단으로서 예수 왕국을 세워 세상을 지배하려는 목적에서 그런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죄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 예수님을 믿는 것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것만이 세상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선택이나 기호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이는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일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신은 가장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할 중한 죄입니다. 이를 가볍게 보기 시작하면 교회는 힘을 잃게 되고 예수 이야기는 한낱 옛날 이야기 수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교회가 목숨걸고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먼저 믿은 자로서 그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런 마음 자세가 유지된다면 교회는 더욱 더 새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