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기독교 교리 중 ‘삼위일체’는 가장 난해한 영역에 속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계시는데 셋이 아닌 하나인 유일신론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셋이란 의미가 아니라 한 하나님만 계시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구절인 요한복음15:26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삼위일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떠나셔야만 성령이 오실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요16:7)란 말씀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오셔서 하실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요한복음14:26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시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실지에 대해 오늘 본문은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시는 동시에 세상이 왜 정죄받아야 하는지를 알리시는 사역을 하실 것입니다.
성령과 예수의 관계, 성령과 세상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지에 대해 우리는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은 철저히 예수의 사역을 이어가실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세상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곳이며,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지를 끊임없이 드러내실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을 예수님이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얼마나 삐뚤어져 있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고 하셨는데, 세상은 그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15:18)는 말씀으로 세상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를 거절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는 답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본질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세상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세상을 없애기 위함이 아닌 살리기 위해 생명까지도 내놓으시는 그를 세상은 극도로 미워했습니다. 억울한 누명까지 씌워서 가장 비참한 처형 방식인 십자가에 죽이는 일까지 서슴없이 행한 세상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진짜 얼굴입니다.
세상의 일그러지고 뒤틀린 모습을 성령은 오셔서 꾸짖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성령이 어떤 방식으로 해내시는지를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초대 교회를 통해 당시 유대 사회를 어떻게 뒤집어 놓으셨는지를 보면 그 사역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를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베드로와 바울이라는 특출난 사도들만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을 통해 세상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는 성령의 도구로서 세상의 잘못된 관행과 뿌리깊은 죄성을 폭로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순종하는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 일을 교회가 하지 않고 있다면 성령과 반대되는 사역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친구가 되는 것이 교회의 임무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