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33절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까?” 2021년 9월 21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원합니다. 적어도 평화가 보장된 곳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진 사회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평화가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자유를 외치는 일반 시민들은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화가 깨진 사회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간 권력자들은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사회 속에서 평화를 잃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더라도 비슷합니다. 어떤 이는 평화가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이는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평안을 누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평안을 누리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누릴 평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는 말에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려는 그의 결심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어떤 장소나 환경을 통해서 평안을 주신다고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린다고 하신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린다는 것은 평안의 주체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안을 보장해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만든 평안의 울타리 안에 제자들이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벗어나 예수님이 건설한 새로운 곳에서 평안을 누린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누린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일까요? 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환난은 평화를 깨뜨리는 주된 환경입니다. 사람이 환난 중에 있으면 평안을 잃게 됩니다. 당장 어떤 불행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한다는 것은 평화를 누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난을 주는 세상에서 어떻게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환난이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되기에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없는 세상 한 가운데서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이것이 가능하기에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담대하라’는 말로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기죽지 말고 세상 앞에서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환난을 제공하는 세상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보장받았기에 우리는 가슴을 활짝 펴고 살아갈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선언에는 세상이 어떤 환난으로 제자들을 공격하든 그것을 막아낼 힘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는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세상이 약속한 평안에 속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훈련을 쌓으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평화롭다고 외쳐도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갈망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제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면 환난을 당할 때에도 예수님 때문에 담대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 담대함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신뢰하기에 더욱 강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거짓된 평안에 속지 말고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