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26절-27절 “더 좋은 날을 고대하며” 2021년 9월 16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나쁜 소식은 예수님이 그들 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진리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좋은 소식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예수님이 그들 곁을 떠난다는 말에 근심이 가득해졌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성령의 오심을 고대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야만 그들에게 영적으로 엄청난 유익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란 말씀은 성령의 시대가 열리면 제자들 스스로 예수님의 이름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누가 대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기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라고 덧붙이신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제자들 스스로 아버지께 기도할 날이 올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스스로 아버지께 기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것을 본받아 예배와 더불어 기도의 삶에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초대 교회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를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임하신 후에 일어난 영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습을 예견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제자들에게는 더 좋은 날이 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보냈던 시간이 나빴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자들에게 성령의 날은 더 좋은 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영적인 현재 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앞으로 누릴 영적인 유익이 무엇과 연결되는지를 놓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음으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고 하셨는데, 이 내용을 보면 제자들의 현재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를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누리는 영적인 부요함인데 이것을 기도의 삶을 통해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의 삶이 풍성해질 것인데 그 근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제자들의 삶은 풍성해질 것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그들의 영적인 삶은 풍요로워질 것임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은 이를 증거하고 있는데 이 축복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기도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더욱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현재보다 더 좋은 날을 고대할 수 있게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지금 여기서 고통을 겪을 수 있지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좋은 날을 고대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누릴 수 있는 날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날을 꿈꾸며 오늘을 당당히 살아가야 합니다. 근거 없는 허약한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둔 성령의 사람으로서 누리는 삶의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