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예수님은 가르치는 수단으로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15:1)를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상대의 이해를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듣는 이들은 비유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는 반응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요6:61)면서 그들의 반응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결국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을 볼 때에 과연 비유로 말한 것이 문제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이 문제인지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요6:65)는 말씀으로 정리하셨습니다. 비유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방식을 문제삼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듣는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비유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비유로 하신 것을 철회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비유로 설명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성령이 오셔서 밝히 깨닫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라고 말한 시점은 지상 사역을 다 마치고 죽음과 부활을 겪게 될 날이 다가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상 사역을 하는 동안에는 지금처럼 비유로 말씀하실 것인데 ‘때가 이르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때가 되면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비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말한 모든 가르침을 깨닫게 하실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성령 시대가 열리면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모든 비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비유를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석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성령 사역의 최대 수혜자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하나님에 대한 것을 우리가 밝히 이해할 수 있도록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라고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독특한 사역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것을 밝히 알도록 성령께서는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누리는 신령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러한 신령한 축복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인해 훨씬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