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22절 “빼앗길 수 없는 기쁨” 2021년 9월 13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근심 중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일 것입니다. 물론 그 위로조차 거부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로는 당장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지라도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보약입니다. 예수님은 근심 중에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는 약속을 하실 정도로 위로를 넘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이 겪을 슬픔이 아무리 크다할지라도 그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출산 후에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모든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기쁨이 모든 슬픔을 몰아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은 더 큰 위로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란 말은 앞 단락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는 말씀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란 말은 그들이 왜 기뻐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이유로서 위로를 더욱 크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기뻐할 것이라 하지 않고 실제적인 근거를 제시한 것이기에 위로가 마음에 더 와닿을 수가 있습니다.

막연한 위로일지라도 근심 중에 있는 이에게는 힘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란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더해진다면 위로는 더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함께 옆에 있으면서 위로한다면 근심 중에 있는 이로서는 말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예수님은 하나 더 약속을 하시는데 그 내용은 너무도 강력해서 제자들에게는 엄청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는 약속이 그것입니다. 이는 기쁨을 빼앗을 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만이 누리는 축복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이 이 땅에서 누리게 되는 삶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기쁨을 빼앗을 자가 이 땅에 없다는 것은 진정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기쁨을 빼앗긴 것처럼 살고 있을까요? 성령의 기쁨을 허락받은 우리가 왜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에 의해 얻게 된 기쁨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로부터 이 기쁨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를 느끼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회복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습니다. 어떤 누구도 우리에게서 이 기쁨을 빼앗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도 기쁨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어찌된 일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의 내면 상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없이도 다른 것들로 얼마든지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유혹하는 세상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과 관계없는 것들로 채움으로 성령의 기쁨이 주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채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할 일은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란 말씀을 새롭게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다시 봄으로 이런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령의 기쁨이 충만해지려면 여기서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 안에 예수님의 형상을 심어주시려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우리에게는 성령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기쁨을 오늘도 여기서 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