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7절 “기도는 신앙 훈련입니다” 2021년 8월 12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사람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갑니다. 어디가 아픈지를 말하고 치료를 받습니다. 기도를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에게 기도를 하는 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 응답이 되지 않으면 기도하는 입장에서 상심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무슨 기도이든 다 들어준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에 근거해서 기도 응답을 기대하면 잘못된 것일까요? 이것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조건이 붙는다면 해석이 달라지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충족된 상태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고 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필요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예수님은 강조하신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누구의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잊지 않아야 함을 본문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방문자로서 잠깐 머무는 정도가 아닙니다. 항상 머물러야 하는 거주자로서 예수님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에서 여러 다른 목소리가 들려도 그의 말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다른 말들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의 집에 상주하면서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우리의 생각과 감정, 가치관을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말하고 듣는 가운데 가치관이 충돌하고 감정이 격해질 수 있지만 그것이 중단되지는 않습니다. 치열한 대화를 하면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되고 그의 말에 따르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 묘사하고 있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약속이 나온 것입니다.

기도는 듣는 이와 말하는 이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말하는 이로서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합니다. 그것이 간절해질수록 우리는 듣는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이런 약점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 하신 것입니다. 이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기도하는 우리의 처지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우리의 마음 속이 어떠한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누구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지를 돌아보라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약속은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가 안에 거하면’이란 조건이 달갑지 않게 들린다면 우리의 기도는 이기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자로서 그의 말을 천금같이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이런 이기적인 모습을 억누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꺾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신앙 훈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