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5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니” 2021년 8월 10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 어디에서 머물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잠시 머물 공간이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곳을 찾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거주할 공간일 경우에는 다릅니다. 방문자로서 잠시 머물 곳이 아닌 계속해서 살아야 할 곳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방문자가 아닌 거주자로서 그들과 함께 머물고자 하심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가 그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나타내주는 비유입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포도나무와 가지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은 이 비유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란 뜻입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가지를 붙들고 있는 나무의 관계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둘의 관계가 기계적인 것이 아닌 인격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함께 한 공간에 거주하되 서로 존중하는 인격적인 관계인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비유적으로 묘사했지만 이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에서 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내고자 하신 것은 가지에 열매가 풍성히 맺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한 조건은 단 하나인데,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되 죽은 상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가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로부터 수분을 공급받는 가지가 된다는 것은 곧 살아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충족될 때에야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와 생명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상태에서만이 진정한 열매가 열릴 수 있음을 예수님은 강조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이를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일상적인 생활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얼마든지 살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할 수 없다’는 것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그를 떠난 이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그와 떨어져서는 안될 사람들입니다. 그를 떠난다면 우리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나타내야 할 삶의 내용이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표현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삶 자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 때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나무가 공급하는 수분을 끊임없이 받는 가지가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이 주시는 힘을 계속해서 받을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듯이 예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를 형성하려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되어야만 우리는 그가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