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미움은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것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미움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한 미움의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해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런 수준의 미움을 받는다면 견디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이런 폭력에 시달리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통해 그들이 어떤 박해를 받게 되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아직은 그런 박해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지는 않고 있지만 예수님은 미리 이것을 예고하심으로 그들을 깨우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한 가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요한복음13:16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이 다시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앞에서 이 말을 했을 때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중심 내용은 같지만 주어진 상황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이 다른 상황에서 들려질 때에는 그 의미도 새로워집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상황에서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는 말을 한 것은 주인의 겸손함을 배우라는 의미이지만 박해의 상황에서 이 말을 했을 때에는 위로하는 메시지가 됩니다. 실제로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라 한 것을 볼 때에 제자들을 위로하신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란 말을 덧붙이시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를 ‘내가 고생한 것만큼 너희도 고생해라’는 식의 뒤틀린 시각으로 보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고생할 것인데,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예수님이 당하셨던 고생을 상기하면서 이겨낼 것을 당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리 알고 도망치라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고생을 피할 방책을 주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당할 세상의 폭력을 묵묵히 감내하라는 것입니다.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은 참기 어렵습니다.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은 사람의 인성을 파괴시킬 정도로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을 감내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면서 그가 당하신 폭력이 어떠했는지를 그들로 묵상하게 하신 것은 이것을 이겨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로서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는 말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려는 지나친 의욕을 알게 될 때에 이 말을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회피하려는 마음이 들 때에도 이 말을 묵상하며 자신과 싸울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처럼 주인의 위치에 계셨던 분이 스스로 낮추어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고 하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전보다 더 희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더 많이 헌신하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 우리는 조금도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같은 말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일은 성경을 읽고 배우는 모든 신앙인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조금씩 성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