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흔해지면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기근으로 물과 음식이 없는 나라도 있지만 너무 풍족해서 함부로 그것들을 버리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사랑의 영역에서도 일어납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그것을 갈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너무 넘쳐서 그것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단어 하나로는 그것의 순수성을 장담할 수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랑’이라 쓰지만 속으로는 ‘사기’라고 읽는 경우가 흔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되고 이기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어느 정도로 매력적일까요? 이런 명령을 받은 그의 제자들은 ‘사랑’의 의미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서 그의 제자들에게 ‘사랑’ 강의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시면서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명령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계명’이 무엇이냐란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까요? 이에 대해 예수님은 명쾌한 답을 주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명령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셨는데,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것은 이미 요한복음 13:34에서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의 명령이 이렇듯이 반복적인 것은 누구도 이를 변경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이를 어느 정도로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사랑은 철저히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에서 우리가 이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물론 요한복음 13:1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고 그의 사랑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내용보다는 지속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인 13절이 적절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진술입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가 제자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실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은 제자들을 향한 그의 사랑과 견줄만한 대상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그의 십자가 죽음으로 나중에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고 고백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그 무엇으로도 이를 깨뜨릴 수가 없다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고백입니다.
제자들은 목숨과 바꿀 정도의 사랑을 예수님에게서 받은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는 명령 앞에 서야 합니다.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사랑하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부담이지만 포기할 수가 없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어느 정도로 순수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는 목숨과 바꿀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때론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이런 사랑을 서로에게 나타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는 순종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랑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실천하기 불가능할 정도일지라도 이 사랑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목숨과 바꿀 정도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 교회의 숙명을 어느 누구도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마음에 품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