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예상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능력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꿈이 실현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꿈꾸던 일들이 좌초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들이 따르던 예수란 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자꾸 죽는다는 이야기를 할 뿐 아니라 세상 일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말을 하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이 원하던 길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걸어온 길이 무엇인지를 재확인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이것은 예수님이 그동안 제자들과 함께 걸어온 길의 특징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그것을 증명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제자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는 이를 완성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란 말은 위험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의 길만을 생각했습니다.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이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는데, 이를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가 먼저 ‘사랑과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 보다 앞서서 사랑과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임금’이 이 길을 가로막고 훼방을 놓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고 하시면서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을 이 세력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관계할 것’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아무리 막강한 화력을 갖고 있고 총공세를 예수님에게 퍼부어도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순종을 좌초시킬 세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이 세상의 임금은 너무도 강력한 훼방꾼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도록 온갖 유혹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셨던 것을 볼 때에 이를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가 명령하신 것을 따르는 일은 이 세상 임금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에 계속해서 훼방을 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로서 이미 그가 걸어가신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유혹 앞에서 마구 흔들릴 것입니다. 심지어 탈선을 해서 이상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위에 서야 하는 이들입니다. 그 길 위를 걸으면서 우리는 아버지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순종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 사도는 그의 첫 편지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고 당부했습니다. 이 세상 임금이 몰래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른다면 교묘한 함정까지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함정을 알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질 수 없는 길로 걸어가기 때문에 피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일에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 임금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