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27절 “성령이 주시는 평안” 2021년 8월 3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는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전쟁이 없는 세상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한 쪽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이웃 나라끼리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도 로마와의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로마의 속국이 되었지만 독립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전쟁은 불가피해보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기근과 질병과의 전쟁도 진행중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기근과 질병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는 ‘평화’였습니다. 국가적인 평화와 더불어 지역 사회, 가정, 그리고 개인의 평화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세상이 원했던 평화의 실체였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과 의학이 첨단을 걷고 있을지라도 평화가 없는 세상이라면 가장 불행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가져오신 평화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평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의 평화가 아닌 예수님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주시는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의 실체는 ‘성령’이십니다. 그렇기에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세상은 성령이 주시는 평화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성령의 열매인 평화를 아예 인식조차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성령이 주시는 평화를 사람들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성령의 평안을 주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누리는 성령의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에서 ‘너희’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을 가리킵니다. 이렇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게서 나오는 평안을 누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이 절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성령의 평안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갖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공격한다해도 성령이 주시는 평안을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세상이 성령의 평안을 이길 수 있다면 우리는 근심하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기에 우리는 근심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을 이기는 힘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근심과 두려움에 맞서 싸울 수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평안에 목말라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에는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평안만을 추구하고 성령이 주시는 평안에는 무관심하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에 푹 빠져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온통 세상이 주는 달콤한 평안에만 중독되어 있어서 성령의 평안에는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가 직면한 가장 위험한 신앙 문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성령의 평안에는 무심한채 오직 세상이 주는 평안만을 추구하고 있기에 위험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성령이 주시는 평안으로 채울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는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