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님은 물리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있지만 장차 그들을 떠나게 될 것을 미리 알리시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라는 약속입니다. 장차 ‘보혜사’가 오셔서 그들과 함께 머무실 것을 예고하신 것인데,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그 보혜사가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오셔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실 것입니다. 그 내용은 ‘모든 것’인데,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한 ‘모든 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기록되기 전의 이야기로서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성경으로 인해 성령의 가르치는 사역은 중단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이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인도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에서 ‘생각나게 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기억나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다른 환경에서 적용되는지를 깨닫게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것을 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성경에 기록된 그의 가르침을 읽는 이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해석을 해야 합니다. 바른 이해를 해야만 바른 적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를 같은 말씀을 읽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래 어떤 의도로 말씀하신 것인지를 성경을 읽으면서 찾아내야 하는데,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예수께서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란 사실은 우리가 어떤 이해를 해야 하는지를 성령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성경이 말한 내용을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을 알려주십니다. 문화와 상황, 언어와 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성경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곧바로 적용하는 위험성을 막아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성경 시대에 쓰여진 이야기를 우리 시대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깨달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에 주어진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를 바울은 너무도 잘 알았기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시는지를 바울은 삶에서 체험했던 것입니다. 성령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변화를 겪습니다. 이런 변화가 계속되면서 우리 삶은 거룩해집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세상과 보조를 맞추는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삶을 뜻합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일은 성령의 가장 주된 사역입니다. 이 사역이 있기에 교회는 연약함과 부족함 속에서도 말씀을 따라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새로운 문화와 시대에도 성경의 영원한 진리가 울려퍼질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삶을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끄시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