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 죄를 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통해 세상과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죽음을 통해 그 일을 성취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저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고 한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극진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 대한 반응에 있어서 두 갈래로 나뉜 모습을 보였습니다. 환영과 거절이 그것입니다. 환영의 의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절의 모습은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의 말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많은 애정을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말과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란 말은 그의 애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룟인 아닌 유다가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란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가감없이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자신을 감추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가림막으로 가려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설교와 가르침, 기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지만 세상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환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로 표현하셨습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예수님이지만 결국 그를 환영하는 이들만이 그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에 비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처럼 그를 거절하는 이들은 그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드러내고 있었지만 세상이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을 지키는 이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더욱 챙기실 것입니다. 그의 돌봄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느냐에 대해 우리는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거처’란 집에 상시적으로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관처럼 임시적으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영원토록 머물 공간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돌봄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친밀한지를 드러내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바로 이런 돌봄을 받을 것입니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세상’과 ‘우리’를 비교했는데, 예수님에 따르면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말을 거절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완전히 끊겨 있습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거주하는 집이 되어 그의 돌봄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우리와 세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나타내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집입니다. 이는 우리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택하셔서 그의 거처로 삼으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다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를 안다면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충실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창문 역할을 우리가 맡았다면 우리는 이 창문을 더욱 더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지킨다면 이 창문의 깨끗함은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