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셨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충격과 근심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설마 예수님이 진짜 죽겠느냐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 곁을 떠나게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시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자신이 그들을 떠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하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란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눈여겨볼 것은 ‘가서’와 ‘다시 와서’입니다. 지금은 떠나지만 제자들에게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떠나는 이유는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가고 오는 행동 모두 다 제자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떠남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다시 와서’란 부분이 이 점을 강력히 지지해줍니다. 잠시 떠나지만 다시 그들 곁으로 오실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 오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됩니다. 성령이 제자들 가운데 임하시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곁으로 다시 오셔서 그들과 함께 머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이전의 형태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동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형태가 아닌 신비로운 동행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란 말에서 우리는 이 점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 후에 ‘다시 와서’ 그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지금처럼 물리적으로 제자들과 함께 머물렀던 형태와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시점에서 그는 제자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이런 형태가 아닌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 곁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떠나 있지만 신비한 방식으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떠남이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혼란을 주겠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다 줄 것임을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예수님을 볼 수 없을지라도 그를 믿고 따르는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초대 교회를 형성하면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예수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 가운데 머물러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를 보지 않고서도 믿고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이 점을 그의 독자인 교회를 향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우리는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못한 상태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그를 사랑할 수가 있으며 기쁜 마음으로 그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으로 인해 믿음 생활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에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품은채 주님을 더욱 믿고 따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보지 않고도 믿는 신앙으로 그를 더욱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