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13절-14절 “무엇을 구하는 기도인가” 2021년 7월 22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음료수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 때에 자판기는 어떤 선택도 할 수가 없습니다. 동전만 주입되면 무조건 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기계이기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만약 자판기가 인격체라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도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에게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들어주는 신의 입장에서 볼 때에 무조건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느냐란 의문이 남습니다. 기도하면 무조건 들어주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어떤 것이든 기도만 하면 들어준다고 약속했다면 몰라도 들어줄 의무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에게 잘 보이려고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신의 마음을 사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여기에 작용합니다. 정성을 더 들일수록 더 많은 것을 신으로부터 얻을 것이란 계산이 인간의 마음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기도에 접근하는 이들의 정서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기도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서 기계적으로 기도에 접근하거나 인간적 욕망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큰 낭패를 겪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어찌보면 기계적으로 기도에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듯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란 문구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기도만 하면 다 들어주시는구나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만 하면 어떤 것이든 다 들어주신다니 이보다 더 괜찮은 조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기서 ‘내 이름으로’란 ‘예수님의 이름으로’란 의미인데, 이것이 우리가 항상 하듯이 기도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뜻한다면 너무도 쉬운 조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 내용을 따지지 않고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만 덧붙이면 하나님은 무조건 들어주셔야 합니다. 우리 쪽에서 한 가지 조건인 ‘내 이름으로’를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든 책임은 기도하는 우리가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있게 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란 말만 넣는다고 기도가 무조건 응답되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게 되는 통로가 기도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기도는 소원 성취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소망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소망이 성취되는 것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 자세가 갖추어져야 제대로 된 기도가 우리 입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를 점검하도록 만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을 우리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기도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 예수님의 이름에 걸맞는 기도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소원 성취 수단으로 기도가 쓰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뜻이 세상에 펼쳐지는 거룩한 통로로 기도가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로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기도 내용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이냐란 질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든 것이란 답을 내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