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자녀를 키울 때 부모로서 속상한 것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자녀가 부모를 가르치려 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일지라도 자녀에게 배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아직 겪지 않은 경험의 영역에서 부모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워야 하는 삶의 지혜는 단순히 책을 통해서만 익힐 수가 없습니다. 삶의 굴곡에서 부딪히는 파도들을 맞으면서 인격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하신 것도 단순한 지식 차원이 아닌 삶의 인격이 걸린 사안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일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은 그저 정보를 아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 나서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위는 후에 일어날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는 말씀은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는 너무도 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행위를 당장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 시점이 되면 깨닫게 된다는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떤 가르침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이란 생각을 내려놓게 만드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성경은 책으로 우리 손에 있기에 얼마든지 읽고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신 이야기를 어떻게 성경이 풀어가는지를 우리는 지식 차원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으로 배워야 하는 신앙은 성경을 읽고 공부만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매우 훌륭한 스승을 만나서 남이 갖지 못한 신앙 지식을 배웠다고 해도 신앙 인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울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갖는 신학적 의의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알리라’는 예수님의 더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이는 지식과 정보로서만 기능하게 될 뿐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에서 ‘안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격이 동원된다는 뜻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라고 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 삶 속에서 그것을 투영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격이 동반된 신앙 변화입니다. 신앙은 지식과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로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격의 변화로 이어지는 일이 없다면 신앙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비록 지금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삶의 굴곡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인생 경험들이 영적인 비료가 되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란 점입니다. 이것이 ‘이후에는 알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희망을 갖고서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입니다. 지금은 알지 못했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신앙 인격이 얼마든지 부족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이후에는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신앙 인격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의 인격을 빚어가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격도 다듬으실 것입니다. 중도에 실망과 좌절이란 암초에 부딪혀도 우리는 ‘이후에는 알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굳건히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를 믿는다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조금씩 변화될 것을 소망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