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환경을 최대한 좋게 만들어주어도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자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물 위에 떠있는 기름처럼 되고 맙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인 가룟 유다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아낌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이는 자기가 선택한 제자들에게 사랑을 부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거절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쏟아부어도 이를 거절하는 가룟 유다이기에 그 사랑이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귀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입되었다는 식으로 본문을 이해하면 안됩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의 희생양으로 그에게는 조금의 잘못도 없는 듯이 해석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유다가 마귀에게 마음을 줌으로 예수의 사랑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를 몇 년동안 따라다녔던 가룟 유다는 어찌보면 마음을 전혀 열어놓지 않은채 지냈던 것 같습니다. 예수의 사랑이 유다의 마음 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의 마음을 차지하는 다른 것 때문에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본문은 ‘마귀가 벌써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묘사한 것입니다. 유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예수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를 팔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팔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그의 개인적인 세상 욕망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랑에 감동되어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이용해서 다른 이익을 챙기려는 그의 마음이 더 컸던 것입니다. 유다의 굳어진 마음을 마귀는 적절하게 이용해서 예수를 팔아넘기려고 한 것입니다. 유다는 선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마귀에게 져서 어쩔 수 없이 예수를 팔아넘긴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 자체가 예수의 사랑이 전혀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굳어 있었기에 마귀가 그것을 이용했던 것임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얼마나 차고도 넘칠 정도로 부어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사랑이 부족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도 부어질 정도로 사랑이 넘쳤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닫으면 이 사랑이 아무리 크고 위대해도 쓸모없게 들립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성경이 아무리 외쳐도 마음의 문이 닫히면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성경을 통해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채 머리로만 이해하면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처럼 취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에게 쏟아부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는지를 점검하고 그 사랑에 온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