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선택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어떤 선택은 평생 후회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신중을 기하지만 또 후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잘못된 선택으로 뼈저린 후회를 하신 것일까요? 가룟 유다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그에게 배신을 당하는 불행을 겪은 것일까요? 예수님은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고 하십니다. 이로 보건대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불행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요한복음6:70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주지시키셨습니다. 또한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란 말도 남기셨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배신할 것을 이미 아셨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를 예수님은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고 밝히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염려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일로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릴 것을 걱정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 가져올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를 짐작케 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수님은 미리 제자들에게 이 일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배신이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 가룟 유다를 선택했다는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를 희생양으로 미화시키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배신할 것을 이미 아셨음에도 굳이 그를 선택한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놓고 시험에 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듯이 가룟 유다의 배신은 기독교 공동체에 여러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관계를 잘못 해석해서 우리의 믿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핑계로 믿음에서 벗어나는 일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이런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은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흔들려서는 안됨을 우리 스스로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는 어둠의 세력들이 얼마나 강력히 역사하는지를 우리는 인지하고 방어해야 합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의 배신을 이용해서 지금도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유다의 배신이 더 이상 약효가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그것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더 확고히 믿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룟 유다를 옹호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마귀는 지금도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사탄의 살벌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믿음을 지켜주셨듯이 주님은 우리의 믿음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도 믿음의 항해를 담대히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