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16절-17절 “기준이 흔들리지 않도록” 2021년 6월 29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본’이란 ‘따라야 할 기준’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행위가 제자들이 따라야 할 모델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위를 기준으로 삼아 자신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본이 되었다’는 진정한 의도입니다. 우리는 보통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어 더 훌륭해지는 것을 칭찬합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도 제자들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낼 것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제자가 세상을 놀라게할 발명을 했을 때 누구보다 스승이 더 기뻐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더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어서는 안된다고 하면 어떤 분야든 더 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항상 제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상하게 들립니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기서 ‘종’은 제자들을,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크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크는 것을 예수님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일까요? 이는 ‘발전’의 개념이 아니라 ‘본’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으로 삼고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면에서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절대 앞설 수가 없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준이 흔들리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기준이기에 이를 따라야만 제대로 된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른 길을 선택하거나 더 나은 길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외에 어떤 것도 그들은 따라가면 안됩니다. 따라서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란 말은 정확히 옳은 표현입니다. 이는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것을 알고 행한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절대적인 모델로 여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따라야 함을 알고 행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이것을 알고 행하는’ 복된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유대 사회에서 아무리 위대해진다고 해도 예수님을 모델로 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행위에 담긴 의미를 자주 묵상하며 깨달아야 할 의무를 제자들은 지고 있습니다.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영적인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은 철저히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의 삶도 예수님을 모델로 삼았기에 박해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고 했던 것은 예수님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바울 자신도 따랐고 모든 교회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살았던 아주 오래된 옛날 사람으로 비춰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가 따라야할 절대적인 기준인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란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나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 기준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를 알지 못하시는 예수님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시기에 그를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