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10절-11절 “미리 알고 있어도” 2021년 6월 25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미운 짓을 하는 자녀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갖고 있기에 어떤 일에 대해 감정을 실어서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 실리면 올바른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에 이것을 미리 막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 하나가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에 대해 전혀 감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이를 드러내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는 말은 어떤 일이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질지를 미리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제자 중 한 사람이 배신할 것을 미리 아심에도 그의 발까지 씻겨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모두 다 깨끗하지 않다고 경고를 주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누가 배신할 지를 아심에도 바로 내치지 않고 그의 발까지 씻겨주다니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알고 당하는 것이 더 나은지, 모르고 당하는 것이 더 나은지를 놓고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예수님은 알고 당하는 쪽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때에 느꼈을 감정에 대해 우리는 추측만 할뿐입니다. 이것을 나중에 제자들이 다 알게 되었을텐데 그들은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까요? 아마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감정이 복받쳤을 것입니다. 가르치신대로 행하신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불행을 미리 알고 싶어합니다. 미리 알게 되면 미연에 방지해서 그런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리 알아도 신앙의 길을 가야 하는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배신할 자를 미리 아셨어도 그를 품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신앙의 힘으로 품어야 합니다. 신앙의 길은 불행을 미리 막아주거나 상처를 받지 않게 하거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길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원수까지 품을 수 있는 관대함을 훈련하는 삶의 여정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가시가 얼마나 날카롭고 매섭든 이를 품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를 이렇게까지 품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은 두고 두고 떠올렸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주변의 수많은 반대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를 놓고 고민하다가도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품으신 것을 생각하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혜택을 누린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당시 교회를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사도로 부름받은 그는 원수까지도 품는 사역을 훌륭히 감당했습니다. 그는 박해하는 자를 품어야 함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피해를 줄 자를 미리 알게 되면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미리 안다고 해도 우리는 이들을 품어야 합니다. 가시를 품으면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품어야 할 가시라면 고통이 있더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도저히 품지 못할 것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가룟 유다를 품으신 예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미리 아심에도 내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품으신 주님의 삶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성령의 도우심이 강력하기에 얼마든지 이를 감당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