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역사가 흐르는 가운데 다양한 색채를 띄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진짜 주인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며 그의 말을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되며, 그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확실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유대인과 비유대인으로 나누어 유대인에게는 구원이, 비유대인에게는 심판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직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인식했습니다. 이런 틀 속에 갇혀 있던 유대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온 세상을 구원할 이스라엘의 메시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유대인을 넘어 온 세상을 품는 놀라운 메시지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는 기존 틀을 고수하면서 예수가 말하는 구원은 필요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가 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신다고 그들은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이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가 누구냐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신 예수님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요? 심지어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이 ‘영생’이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 또한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거절한다면 영생을 거절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이 정도로 강력한 메시지를 예수님이 본문에서 전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분리해서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지금 영생을 얻느냐 못얻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인데, 영생이 없는 곳에는 심판 뿐입니다. 즉, 영생이 없다면 심판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양보해서는 안될 진리입니다. 이것을 양보하게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한 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를 간파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점을 강력히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제부터 예수님의 눈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그릇된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왜 반드시 예수님만을 의지해야 하느냐에 대한 가장 분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자상한 어머니로, 하나님을 엄격한 아버지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설교하신 이야기들을 통해 구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성실하게 해낸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거나 예수님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는 가장 위험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의지하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