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장 47절-48절 “운명의 갈림길에서” 2021년 6월 16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선택이길래 인생 전체가 그 하나에 달라질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인생이 통째로 뒤바뀔만한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선택을 잘못해서 큰 피해를 입을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회복되는 것이 인생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들여다보면 인생 전체 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까지도 좌우될 수 있는 중차대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하실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여기서 ‘심판’이란 최종적인 것으로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직 하나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것입니다. 이를 본문은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라고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면, ‘나를 인정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47절,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우리에게 육체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계속해서 구원의 기회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을 거절해도 곧바로 심판이 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심판이 아닌 구원을 제공하시는 예수님의 뜻은 언제나 분명합니다. 사람이 심판으로 인해 멸망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서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고 합니다. 요한복음 20:31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통한 영원한 생명을 지금 여기서 얻을 수 있다는 이 소식은 당시 유대인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이 소식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기회가 주어졌지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심판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는 지금 여기서는 구원의 문이 계속 열려 있음을 일깨워주는 또 다른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운명의 갈릴길에 서 있는 매우 위태로운 인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서 마치 물건을 선택하듯이 가볍게 여기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는 우리 운명 전체를 가르는 세상에서 유일한 잣대입니다.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이를 이기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바른 태도를 항상 견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유혹은 하나의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를 미리 방지하고 끊임없이 예수의 사람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면 우리는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