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장 4절-6절 “진심인듯 하지만” 2021년 5월 19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치관의 차이를 느낄 때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시민의 삶을 알기 위해 시장을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비판과 옹호의 말을 쏟아냅니다. 선한 의도로 했을지라도 얼마든지 다른 평가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비싼 향유 한 근을 사용합니다. 그녀는 그것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예수님의 제자들 중의 한 명인 가룟 유다가 매우 비판적인 말을 내뱉습니다. 그는 마리아를 향해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으냐”고 한 것입니다. 이것만 놓고 볼 때에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 쉽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 한 노동자가 일 년동안 벌 수 있는 수입에 버금가는 향유 한 근을 예수님에게만 쓴 마리아를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자고 한 가룟 유다의 말을 틀리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본문은 마리아가 아닌 가룟 유다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자가 가룟 유다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는 가룟 유다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입장에서 쓴 것입니다. 향유를 돈으로 바꿔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자는 가룟 유다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는 진심어린 말로 들리지만 그의 속내는 너무도 사악했던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돈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즉, 향유를 돈으로 바꾸면 그것을 자신이 관리할 것이고 기회가 되면 그것을 개인적으로 착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이런 속내를 숨기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마리아의 행동을 비난했음을 저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믿지 말고 의심해보라는 의도일까요? 멋지고 훌륭한 말을 하는 이들일수록 더 조심하라는 뜻일까요? 예수님보다 가난한 자를 더 크게 생각하는 시각을 비판하기 위함일까요? 모두 다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본문은 물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히면 누구든지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지만 마음은 항상 물질(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수한 헌신까지도 물질로 환산해서 개인적인 이득을 따졌습니다. 그는 아마도 일정 부분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차지할 분량을 확보하려는 계획 속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도 꿰뚫고 계셨고 이를 기록한 본문의 저자도 정확히 파악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이런 모습은 어찌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우리의 속마음이 어떠한지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할 것을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이를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물질은 우리의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에서 자유로울 신앙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속마음을 정직히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를 잘 할 수 있다면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가룟 유다처럼 진심을 가장해서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 바울의 말을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물질 욕망을 예수님을 향한 헌신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우리로 예수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