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거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것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개인적인 과거를 넘어 모든 이가 공유하는 과거 이야기를 우리는 역사라 부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역사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책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에 그들은 이를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님에게도 소중했는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이는 너무도 엄청난 선언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님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처럼 구약 성경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구약 성경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이란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율법은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킵니다. 구약이 그리스도를 예고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무엇을 강조하냐면 ‘영원히 계신다’입니다. 이는 그들 앞에 있는 예수란 사람은 그리스도일 수가 없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시는데, 예수는 자꾸 죽는다고 하니 결국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고 말하는 그들의 속마음을 우리는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인자가 예수를 가리키고 그가 죽는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일리가 없다는 점을 그들은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렇듯이 둘 다 같은 구약 성경을 보고 있지만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이는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겪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 이후에 일어날 부활을 예고하시면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이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란 말씀도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한다고해서 그가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아니란 증거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비교적 정확히 알았지만 이렇게도 어긋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입니다. 같은 곳을 보고 있다고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책인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든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구약의 성취이며 신약의 심장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것이 항상 우리로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중심의 성경 해석이 우리로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구약을 새롭게 읽고 이해하는 일은 이렇듯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신앙 훈련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계속 쌓아갈 때에 구약 이야기가 예수 안에서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