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해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감옥에 갇힌다면 어떤 마음일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씌워서 사형을 시킨다면 그 억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도 율법을 범한 자로, 신성 모독을 저지른 가증한 자로 정죄를 받아 고초를 겪었고 결국 십자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이를 미리 알고 있었던 그는 매우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나오는데,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입니다. 여기서 괴로움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가리킵니다. 이 고통이 너무도 심해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리요’란 말은 그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나타내는 수사적인 표현입니다. 설명할 수도 없을만큼 심적 고통이 극심했기에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겁쟁이처럼 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당당한 삶을 살았고 복음서는 이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죽음으로 온 세상의 죄를 다 짊어져야 했기에 그의 심적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란 그의 고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아무리 당당해지자고 다짐해도 바닥 없는 깊은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고통을 겪다보면 우리의 신앙은 어느 순간 뿌리 없는 나무처럼 말라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여준 반전의 매력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괴로운 마음에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곧바로 그는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고 재다짐을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대목입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이렇듯이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심적인 고통 중에 자신의 사명을 생각했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목표 의식까지 내비친 것입니다.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삶의 태도는 의미심장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인 것과 그것을 여기에 기록한 것은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갖고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살다보면 이런 저런 고통을 겪게 됩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을 것이라 말했던 바울의 말처럼 주님을 위해 사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주님을 위해 살 필요가 있느냐란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게 됩니다. 의욕은 사라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어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이 본문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반전의 매력을 품어야 합니다.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아무리 고통이 심할지라도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신앙은 굳건해집니다. 아무리 고통이 우리를 괴롭혀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이기는 신앙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고통 중일지라도 더 강인한 신앙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