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장 25절-26절 “고생의 떡을 나눠 먹는다면” 2021년 5월 31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는 물이 거꾸로 흐르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보통 ‘순리를 따른다, 대세를 따른다’고 하듯이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때에 이를 거역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 정도로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해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는 당시 온 우주를 지배하고 있던 거대한 흐름을 끊는 일을 하셨는데 그의 죽음으로 그 일을 해내셨습니다. 어찌보면 모든 이들이 죽는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죽음은 세상의 흐름을 바꿔놓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을 쥐고 있던 어둠의 권세의 뿌리를 뽑아버린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정확히 알고 계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시면서 자신이 죽어야 많은 열매가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더 심오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린 애국자들을 예수님의 죽음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부모와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숭고할지라도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영생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굴복시킬 수 있는 죽음을 예수님 말고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놓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죽음을 예고하신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셨기에 그를 섬기는 이들도 예외없이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그냥 소풍 가듯이 할 수 있는 가벼운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 새로운 복지 혜택을 누리는 과정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고생은 예수님이 다 하시고 우리는 좋은 집과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아 복받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기복 신앙의 자리는 없습니다.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란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가야 한다는 뜻임을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선택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입니다. 고생스러운 곳은 피하고 편하고 좋은 곳만을 골라 예수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그 무엇이든 감당하는 신자를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십니다.

잔치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고통스러운 곳에는 한가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리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우리는 자꾸 인위적으로 안전과 행복만이 진짜 신앙 생활이라면서 자기 체면을 거는 것 같습니다. 고생스러운 일에는 동참하지 않으려는 이 시대의 흐름을 우리는 끊을 필요가 있습니다. 때론 위험하고 힘들어도 예수님이 그 곳에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모험의 연속이라 말합니다. 모험이 없이 믿음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모험에는 항상 위험이 뒤따르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도 때론 고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 생활을 우리가 해낸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다함께 고생의 떡을 나눠 먹는다면 그 곳에 웃음이 가득한 행복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교회를 이룬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