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누군가가 죽은 자를 살려냈다고 한다면 일단은 의심부터 할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봤다고 한다면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사는 이들은 그런 일에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문화 자체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기 일이 아니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일반인들 뿐 아니라 사회 고위층도 이 사건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인 파장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들이 무엇을 염려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미 땅과 민족은 자유를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속셈이 무엇이었을까요? 자신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란 그들의 말에서도 그들이 이것을 두려워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실제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심으로 이를 증명하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가 살아난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들의 입소문으로 유대 사회 전체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던 기득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를 놓고 얼마든지 비판할 수가 있습니다. 살 길을 보여주어도 그것을 발로 차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그들의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차지하던 자신들의 지위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욕망이 이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회적인 지위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력히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욕망이 당시 유대 사회의 기득권층에만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모든 욕망을 이겨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으셨습니다. 사람이 되셔서 모든 고난을 감내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 길을 열어놓으신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께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이를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따른다면 이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새로운 힘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소망입니다. 자기 훈련, 자기 극복만으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득권이 생기면 우리도 그것을 유지하고 누리기 위해 예수님을 등질 수가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겸손함을 잃지 않은채 이기적인 욕망을 이겨내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자신의 지위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을 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