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은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며 소위 먹방을 하는 유튜버들이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간접 경험을 통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같은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찾아가 맛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물론 먹방을 하는 분들과 차이가 나는 음식 맛에 실망을 할 수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 일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직접 체험한 이들의 열정에 좌우됩니다.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본다면 내용이 훨씬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29절에 이어 36절에서도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증거합니다. 이번에는 그의 제자 중 두 사람이 그 이야기를 직접 듣습니다. 스승을 믿고 따르던 두 제자는 특이하게도 스승의 말을 듣고 곧바로 예수를 따릅니다. 그들이 스승의 허락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스승이 미리 제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라고 권면한 내용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직접 두 제자에게 예수님의 정체를 말합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그들에게 뭔가 결정하라는 메시지가 되었음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따른 행위는 스승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40절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이란 말을 언급함으로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열정이 자신의 두 제자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왜 나를 따르느냐’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어디 계시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와서 보라’면서 자신의 거처를 그들에게 공개하십니다. 그들은 ‘그 날 함께 거하면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그와 함께 거하는 이 모습은 평범해 보이는 듯 하지만 결코 사소한 일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신령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동거는 이 두 사람에게 가장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준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이것을 두 제자 중 하나인 안드레는 형제인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언을 하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그와 함께 머물면서 보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이 그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드레의 증언인 ‘우리가 만났다’는 말은 그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를 충분히 짐작케 합니다. 그는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스승인 요한의 증언인 ‘하나님의 어린 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면서 확인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찾아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신비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리적인 방식이 아닌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이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는 진실된 고백이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척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열정이 생겨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가장 멋진 모습입니다. 또한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삶이 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공동체로서 그와 함께 사는 것을 보고 배우는 열정으로 가득채워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