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지식이 힘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의 공유화가 극대화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말은 유효합니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정보를 얻었을 때 그것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유익을 얻기도 합니다. 지식과 정보의 차이를 말하기도 하지만 이 둘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느냐에 따라 지식의 폭도 넓어집니다.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정보를 수집했기에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오시자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의 지식은 구약 성경에서 온 것입니다.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은 구약 제사 제도에서 희생 제물을 연상케 합니다. 레위기4:32-35에 자세히 나오는데, 누군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어린 양을 속죄 제물로 가져오면 제사장은 화목 제물로 어린 양을 제단 위에 바칩니다. 이것을 저자는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고 신학적 설명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받쳤을 때 그 사람의 죄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세례 요한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세례 요한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요? 그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두 번이나 언급합니다.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곧 예수님이심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인 줄 알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합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물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물 세례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졌는데, 이것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정체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는 방도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물 세례를 예수님에게 베푼 후에 성령이 그의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분이신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말했던 맥락이 이렇습니다. 구약이 말하는 메시아에 대한 지식은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아가 예수님이신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그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객관적인 지식이 주관적인 확신으로 자리잡는 순간입니다. 이제는 목숨 걸고 예수님이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식이 확신으로 바뀔 때 얼마나 사람이 확실히 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설교를 통해 예수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가벼운 지식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정보 수준으로 예수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이 확신이 될 때 우리는 바뀝니다.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일한 어린 양임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지식을 넘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강력히 증거할 수 있는 내적인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