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의 마음” (시편100편 묵상) – 6/30/2020

기독교는 철저히 하나님에게 의존합니다. 하나님이 시작이시고 끝이십니다. 성경의 시작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로 증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직면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사람 이야기가 가득해도 하나님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야기는 우리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그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들이기에 성경은 그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성경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를 규정하는 최고의 모습은 예배입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예배자인 사람의 관계를 놓치면 우리의 성경 읽기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어떤 모습을 보이시는지, 그의 백성인 우리는 어떤 태도를 나타내야 하는지를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태도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예배자의 마땅한 태도는 무엇인가요? 시인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고 말합니다. 그는 “찬송함으로 그의 궁전에 들어가서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고 외칩니다. 예배자로서 우리에게 찬송이 가득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찬송은 시편 전체를 흐르는 핵심 주제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자는 외침은 시편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찬송할 상태가 아닐지라도 찬송은 쉴 수 없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과 우리의 위치를 규정해주기에 우리는 그것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찬송과 더불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할 감정은 기쁨입니다. 시인은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고 말합니다. 기쁨이 찬송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찬송을 통해 그의 감정이 기쁨으로 충만해짐을 시인은 이미 경험한 것입니다. 시인은 찬송과 기쁨의 이유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놓인 우리이기에 기쁨과 찬송은 함께 어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찬송과 기쁨의 이유가 다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 구원자, 부모로 인정한다면 찬송과 기쁨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찬송이 사라지고 기쁨의 감정이 메말라간다면 예배자로서의 마음 자세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의 찬송이 얼마나 우리 안에 가득한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찬송과 기쁨이 살아나면 감사는 우리 마음을 가득채울 것입니다. 시인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자”고 합니다. 감사는 찬송과 기쁨과 어울리면서 예배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에 감사는 끊임없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의 찬송과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해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영원하기에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자로서 찬송, 기쁨, 감사로 하나님 앞에 오늘도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