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몰고 올 후폭풍 중 하나라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먹고 사는 문제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국가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존이 걸린 심각한 이슈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경기 침체는 주기적으로 사회를 뒤흔들어놓았습니다. 최첨단을 걷고 있는 현대 사회도 이 관문만은 무사통과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때에 가장 큰 이슈가 언제나 경제 문제인 것만 봐도 사람들이 무엇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도 경기 침체에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이들에게 경제 문제는 삶의 중요한 이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생활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근심과 불안이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는 우리 삶의 큰 이슈입니다. 시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스스로에 물어봅니다. 마음 속에 일렁이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모습입니다. 불안감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신앙 생활이 달라집니다. 잘 다루지 못하면 영적 침체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시인은 낙심과 불안감에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다독이지만 영적 침체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상태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영적 침체 상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시인은 지금 신앙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지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려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불안에 시달리는 자신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명령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질 때마다 확인할 것은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입니다. 무엇 때문에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지를 진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영적 갈증은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면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란 영적 갈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적 갈증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것이 생기면 어떤 영적 침체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조롱해도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큰 축복인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