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간다는 것” (시편92편 묵상) – 6/20/2020

시편을 읽다보면, 자주 보게 되는 표현 중 하나로 “주께서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에서도 이 표현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의 감탄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에서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의 위대성을 매우 깊이 깨우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시인의 안목입니다. 그는 무엇을 근거로 주의 행하심을 이해한 것일까요? 시인은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시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행하심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대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인자하고 성실하신지를 깊이 깨달은 시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지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시인처럼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보 차원에서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는” 모습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시인의 모습이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은 수학공식 외우듯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뉴스를 통해 어떤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진정으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의 생각의 깊이를 깨달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높이고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시인은 ‘의인’으로 규정합니다. 행동 차원이 아닌 관계적인 측면에서 의인을 규정합니다. 진정한 의인은 하나님의 행적을 크게 여기며 주의 생각의 깊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의인을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는”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나무라면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며 풍성한 열매가 열릴 것은 너무 자명한 것입니다. 심지어 시인은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사람은 세월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영적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그를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정보와 지식으로만 알아가는 것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앎이란 우리 삶을 새롭게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마음 깊이 헤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우리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는’ 삶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 불의가 없음”을 세상에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마음을 쏟는다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중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