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옥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해 스스로 거기에 갇히기도 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 곳에 자신을 가두기도 합니다. 시인은 “내가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한다”고 마음의 상태를 진솔하게 표현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삶의 균형이 깨집니다. 일상의 삶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패턴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헝크러지게 됩니다. 시인은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가 없다”고 마음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눈을 붙일 수가 없는 날들이 많아지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위험 수위를 넘게 됩니다. 시인처럼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휩싸이게 됩니다.
마음의 감옥에 갇힐 때 신앙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시인처럼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신다”는 지점에 도달하면 신앙이 과연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란 회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신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느낌에 사로잡힐 때 과연 기도를 할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시인은 놀랍게도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는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불안과 근심, 마음의 상처, 괴로운 심정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은 시인의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마음의 감옥에 갇히면 내적인 아픔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인처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픔을 딛고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정도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면 안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감정 해소 수준에 머물면 안됩니다.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느끼는 후련한 기분 정도에 만족하면 안됩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할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우리가 아픔을 딛고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할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겪은 아픔과 상처만을 기억하면 위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일”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이 말한 것처럼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주의 팔로 주의 백성을 속량하셨던” 출애굽 사건이 있습니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모든 신앙인에게 커다란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감옥에 갇힌 우리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실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주님이 길을 내시면 바다일지라도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신뢰가 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픔을 딛고서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