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서로 우애하며 잘 지내는 것을 보는 것은 부모의 행복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라도 얼마든지 서로 싸우고 대립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평생 서로를 보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나쁠 수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낍니다. 다 큰 자녀들이 서로 으르렁대면서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폭력을 휘두르고 독설을 퍼부을 때 집 안 전체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전체를 형제로 규정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이들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적으로 묘사하면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합니다. 이것은 있는 사실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일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스라엘이 꿈꾸어야 할 인간 관계는 아름다운 연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연합을 실제적으로 보여준 곳이 예루살렘 초대 교회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2:44-47)란 모습은 오늘 시편이 그리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현실이 되어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성격, 기질, 자라온 환경, 사는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한 우리의 시대에 초대 교회의 연합은 꿈같은 모습입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초대 교회가 이룩한 아름다운 연합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혈연, 지연, 학연을 뛰어넘어 하나된 모습을 보인 것은 모든 교회에 묵직한 교훈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연합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지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면서 그것을 동경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쓴 비유는 우리에게는 낯설고 공감하기 어렵지만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다”는 표현을 보십시오. 우리는 아무리 기름이 귀해도 머리에 쏟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붓는 한 여인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 사이에 이루어진 연합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함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는 비유를 보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이스라엘에 축복인지를 우리는 잘 공감하지 못하지만 유대인은 이 비유를 들으면서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지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름다운 연합을 하나님이 얼마나 축복하시느냐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라는 시인의 말에 이것이 충분히 담겨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간의 연합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교회가 항상 명심하고 이루어내야 할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