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쟁이 활발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과 경쟁하는 일은 달갑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경쟁에서 항상 승리할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지만 언제 패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패배한 자로서 겪어야 할 아픔이 항상 같지는 않지만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혜택을 받은 것 같으면 우리는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특권을 누리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킵니다.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 일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은혜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가 어떤 기준을 통과한 결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남과 경쟁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구원을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엡2:8)이라 말합니다. 구원을 경쟁에서 이긴 결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설기만 합니다. 경쟁을 통해 구원을 얻으면 공평할텐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 불편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다니 불공평하다는 볼멘 목소리가 터져나옵니다. 하지만 은혜를 아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물로 얻은 구원을 너무도 귀하게 여깁니다. 공평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에 구원을 선물로라도 받을 수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은혜로 얻은 구원의 감격을 아는 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다음이 무엇이냐란 질문 앞에 자신을 세웁니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 묻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란 귀한 선물을 받은 이들을 향해 던지는 도전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시편 저자는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한 자”로 살아야 함을 촉구합니다. 은혜의 선물을 손에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은혜에 맞게 살아가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그런 신앙인을 향해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문에 들어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격도 없는 우리들이 신앙의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그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은혜의 선물로 그 문을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답게 우리는 삶으로 증명해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도 우리는 의연하게 신앙의 문에 들어선 사람임을 증명해내야 합니다. 신앙인다운 모습으로 오늘 하루도 우리는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