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볼 수가 있습니다. 과거 조선은 500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뒤 영원할 것 같았던 나라가 500백년만에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로마가 한 때 세계 최강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로마 제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입니다.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가 있습니다. 부흥할 때가 있으면, 쇠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서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중략)..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인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굴곡이 있다는 뜻입니다. 굴곡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한 쪽에서는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의 한 쪽은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홍수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도 이와같은 비슷한 굴곡이 있습니다. 전성기를 달리던 선수가 어느 순간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집니다. 부상이 없음에도 원인모를 슬럼프에 빠져 전혀 회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재기에 성공해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은퇴할 시기가 찾아옵니다. 은퇴한 후 아무리 위대한 선수라도 현역으로 다시 뛸 수는 없습니다. 설령 은퇴를 번복하고 현역으로 뛰어든다해도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운동 선수의 굴곡의 삶입니다.
그럼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도 일정 주기가 있습니다. 청년의 시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의 전성기로서 부흥을 맛보는 시기입니다. 모든 일이 부흥의 밑거름이 됩니다. 교회에 대한 소문이 좋게 납니다. 설령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도 금방 사그라집니다.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 교회가 없듯이 청년 시기를 거치는 교회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찻잔 속의 폭풍처럼 찻잔을 깨뜨리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반대로 쇠퇴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쇠퇴기를 맞이하면서 교인들이 교회를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작은 문제도 크게 불거집니다. 작은 원망들이 크게 들립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입기 시작합니다. 시기와 질투가 통제되지 않고 교회 전체를 흔듭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평과 원망과 험담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을 세우기 보다 허무는데 전력을 쏟습니다. 이것이 쇠퇴기를 맞이하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각 신자마다 겪는 신앙의 굴곡이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후 영적인 변화를 경험할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체험한 사람은 다 압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그의 모든 삶이 변화되었듯이 회심한 신자는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변화는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찬송을 부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면 불이 꺼진 장작처럼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사라집니다.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신앙이 어떤 굴곡을 겪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신앙의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까? 아니면 신앙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까?